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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문화

중동의 향신료 시장과 감정 자극: 음식 냄새가 부르는 집단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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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신료와 후각 기억: 정체성의 원형적 자극

중동의 향신료 시장, 예를 들면 이란의 테헤란 바자르, 모로코의 마라케시 수크, 터키의 이스탄불 미스르 차르쉬(이집트 시장) 등은 단순한 거래의 공간을 넘어서 집단 감각의 보관소라 할 수 있다. 특히 계피, 커민, 카다멈, 사프란, 터머릭 등 수백 가지 향신료가 어우러진 이 공간은 인간의 후각 시스템을 자극하는 강력한 정체성의 원형으로 작용한다. 심리학에서는 냄새가 해마와 편도체를 직접 자극하여 감정과 기억을 연결하는 경로를 만든다고 본다. 즉, 특정 향신료의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식탁, 어머니의 요리, 명절의 분위기, 혹은 고향의 거리 풍경 등 감정이 얽힌 ‘시간의 단편’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는 개개인의 감정뿐 아니라 집단의 기억을 촉발하는 기능을 하며, 정체성의 감정적 뿌리로 작용한다.

 

2. 향신료 시장의 집단 감각: 문화적 일체감의 매개체

중동의 향신료 시장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다. 후각과 감정이 교차되는 다감각적 공간이며, 수세기 동안 민족과 종교, 문화가 얽힌 중동인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향신료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닌 감정적 유산으로 기능하며, 시장을 방문하는 이들은 그 속에서 공동체의 감각적 문법을 경험하게 된다. 이 감각의 공통성은 낯선 이들에게도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게 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한다. 이집트에서는 시장에서 풍기는 ‘두카’ 향신료 향이 라마단을 연상케 하며, 레바논에서는 ‘자타르’ 향이 가족과의 식사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향신료 냄새는 특정 민족 공동체의 삶의 리듬, 계절, 종교적 리추얼과 결합된 감정적 상징체계를 형성한다.

 

3. 냄새의 감정학: 향신료와 사회적 기억의 심리적 역할

후각은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원초적이며 직접적인 감정 반응을 유도하는 감각이다. 향신료 시장에서 접하게 되는 냄새 자극은 타 문화권 사람들에게도 이국적이지만 친근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난민, 이민자, 디아스포라 공동체에게 향신료의 향은 단순한 향이 아닌 고향에 대한 감정적 고리가 된다. 연구에 따르면, 향신료의 향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타지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완화시키며, 향수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시킬 뿐 아니라, 세대 간 기억의 전이를 유도하고, 새로운 정착지에서도 문화적 자존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향신료는 결국 냄새를 매개로 집단 정체성과 정서적 회복력을 연결하는 심리적 인프라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중동의 향신료 시장과 감정 자극: 음식 냄새가 부르는 집단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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